농업을 버린 나라 필리핀–경제 부국에서 파국을 맞이 하기 까지 (8)
2008 년 필리핀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습니다. 바로 먹을 쌀이 없어서 입니다.
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살던 나라 필리핀.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하며 …
경제계와 산업계는 물론 정부 예산당국이 농업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은 사양산업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.
생산성이 떨어지고, 경쟁력이 없는데 굳이 많은 돈을 투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.
자유무역으로 시장을 개방하고, 부족한 식량은 사다 먹으면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.
이들의 이런 시각은 알게 모르게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퍼져 있다. 정말 농업은 버려도 되는 산업일까. 이에 대한 답은 필리핀에서 찾을 수 있다.
필리핀은 한때 농업이 번성한 국가였다. 일년에 삼모작이 가능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고, 1960년대에는 아시아 농업혁명을 이끌었다.
국제미작연구소(IRRI)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. 탄탄한 생산기반을 바탕으로 주식인 쌀 생산을 늘려 국내 소비를 충당하고 수출까지 했다. 하지만 30여년간 농업을 홀대하면서 1990년대부터 몰락의 길을 걷는다.
90년대 초 필리핀 정부는 농업 투자를 절반으로 줄였다. 쌀이 남아돌고 국제 쌀값도 안정세를 보이는데, 굳이 농업에 투자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득세했다. 더욱이 ‘식량이 부족하면 사다 먹으면 된다’는 인식이 확산해 농업은 제쳐 둔 채 산업화에 몰두했다.
1995년 국내 쌀값이 오르면서 첫번째 위기가 찾아왔다. 필리핀 정부는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쌀 수입을 결정, 1996년부터 연간 105만t의 쌀을 수입했다. 쌀 수출국에서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것이다.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.
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식량위기는 각국의 쌀 수출금지로 국제 쌀값을 단숨에 두배 이상 끌어올렸다.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이 직격탄을 맞았다. 값이 너무 올라 쌀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.
정부가 공급하는 쌀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온 나라에서 펼쳐졌다.
쌀을 달라며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였다.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쌀을 배급하고, 식량위기 타개를 위해 1조원 규모를 투자하는 ‘식품자급자족계획’도 내놓았다.
하지만 필리핀의 식량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. 2009년 필리핀은 270만t의 쌀을 수입했다.
2010년에도 245만t을 들여와 여전히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다. 올해 필리핀 정부는 130만t의 쌀을 수입할 계획을 세웠으나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라는 오명을 씻고자 이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.
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. 지난해 필리핀은 엘니뇨에 따른 가뭄의 여파로 쌀 생산량이 예년에 견줘 3% 줄었고, 이는 목표치를 3.8%나 밑도는 양이다.
결국 이는 부족한 쌀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. 돈만 있으면 언제, 어디서나 쌀을 사올 수 있을 줄 알고 농업을 버린 필리핀, 그들은 요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.